일기

매니저 되기 - 2부

Mood Lee 2021. 1. 16. 20:30

2019년 하반기를 말아먹은 뒤 찾아온 2020년.

혼돈과 카오스로 가득했다.

 

 

2020년 1월, 구글 애널리틱스 공부

1월은 시작의 달. 시작해야 하는 느낌뿐만 아니라 시작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충만했다. 수영을 시작했고 구글 애널리틱스를 공부했다. 인적성 수리에 약해서 수리 문제만 모은 교재를 풀었다. 계속 고개 숙이고 풀고 있자니 뒷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독서대를 샀다. 즉 체력, 마인드, 기술, 도구 모두를 갈고닦았다. 상반기를 위해서.

 

 

친구의 메세지

그런 생활이 힘들었나 보다. 2월의 기억은 희미하다. 뭘 했었는지 떠올리려고 사진을 찾아봐도 소득은 없다. 왜냐,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끼느라 셀카를 적게 찍는 것처럼, 힘들었으니 사진이고 뭐고 별 거 없었던 거다. 누가 준 건지는 몰라도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 해보려 버티고 있었다. 사진첩엔 그저 친구들의 응원이 가득하다.

 

 

친구에게 준 졸업 취업 축하 꽃다발

그즈음 2019년 하반기부터 취업을 같이 준비하던 친구가 졸업을 확정 짓고, 곧 취업했다. 코로나 상황이 많이 나빠져 학교에선 졸업식도 열리지 않았다. 아직은 추웠던 3월의 오전 시간, 꽃다발 포장을 기다리며 꽃집 사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졸업식 특수가 사라졌다고. 졸업식은 어디로 간 걸까, 또 그 많은 졸업생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난 졸업유예를 결정했고 신분만 학생인 특수 상태가 되었었다. 이런저런 내 마음 탓에 꽃다발이 무거웠다. 봄꽃 구경은 집 앞 공원에서 했다. 평일 오전과 오후 시간대. 부유하는 시간.

 

 

2020년 4월, 연대 버스 정류장 앞

4월에 외국 생활 중인 친구가 귀국했다. 귀국 역시 또 코로나 탓이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신촌 연대 앞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싫어 길 안쪽의 돌담에 앉아 담배를 폈다. 하늘 색이 쓸쓸했다. 사람들은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지 눈 앞을 휙휙 지나가고, 담배 연기는 느릿느릿 피어오르고. 상체를 뒤로 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냥 그땐 누가 툭 찌르기만 해도 울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친구와 따듯한 날에 종로 루프탑에서 영화 모아나를 봤다. 의미 깊은 영화였다. 특히 Village crazy lady가 알려준 삶의 지혜, 자기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 그리고 Outtake 곡인 More의 후렴구, '분명 뭔가 더 있을 거야'. 취준 중 여러 좌절의 순간에 큰 힘이 되어준 곡들이었다. 3, 4월엔 자잘한 자소서 10개를 썼다. 산업을 보는 시각을 넓혔다.

 

 

2020년 5월, 아침 공원에서의 독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새로운 경험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다만 취준 기간엔 그런 게 잘 없다. 가슴 아픈 경험도 한 두번이면 해보겠는데, 그게 주구장창 반복되기까지 한다.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경험에 나를 내던지며 나도 모르는 새 정신적 탈출구나 보상을 스스로 찾아왔던 것 같다. 뜬금없는 등산, 아침 산책, 밤 산책, 독서, TV 프로그램 방청, 헤어밴드, 반바지... 그중 최고를 뽑자면 단언컨대 요리다. 요리는 새로운 경험 끝에 작은 성취감까지도 마련해둘 정도로 섬세함을 가진 친구다. 그라탕 소스를 직접 만들고, 최고의 모양새와 맛을 위한 재료 손질법을 보고... 끈기로 끝까지 해내고 나면 정말 뿌듯하다. 취준 기간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자주 까먹게 된다. 요리 같은 여러 취미들이 부정적 생각을 몰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2020 국비유학생 공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꿀 정보 찾으러 들어갔던 학교 홈페이지에서 국비유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나는 유학이나 대학원에 정말 관심이 1도 없었다. 정말. 내 전공 특성상 대학원 진학하는 비율이 낮기도 했고, 공부를 몇 년이나 더 하고 있을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기도 했다. 무엇보다 필드에서 구르며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학비를 지원받아 역량을 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국비유학생 지원 자체뿐만 아니라 GRE, SoP, ... 5월 교수님들께 도움 받으며 부랴부랴 서류를 마무리하고 강남 해커스 GRE를 등록했다.

 

2020년 6월, 강남 해커스 GRE Verbal

공부는 시간이 걸린다. 과제처럼 기한 내에 부랴부랴 해치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걸 애써 외면하려 했던 시기였다. 지옥이었을까? 글쎄. 인생에서 가장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던 시기랄까... 영어로 써있어도 수학은 수학이었다. 빡빡한 시간표 속에서 Math 시간이 찾아오면 그나마 어깨가 펴지곤 했다. 가장 최악은 Writing 수업이었는데, 마치 내 자괴감을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무시무시한 공장 같았다. 이걸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원하는 시험 점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을 말 그대로 거의 쏟아부었는데, 참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2020년 7월, 양평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친구들과의 시간 덕이었다. 나는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친구가 말해줬다. "너 그때 엄청 짠했어. 놀러간 건데 뒷좌석에서 영어 단어 외우고 있었잖아." 그땐 그랬다. 1분 1초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친구들과 논 게 아니고, 살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었단 말이다. Math를 완성(?)하고 Verbal과 Writing에 나름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일은 산더미였다. SoP는? 토플은? 면접은? 정말 다 할 수 있어? 정말로?

 

2020년 8월, 졸업

다 관뒀다. 엄청 아팠다. 응급실 천장을 바라보며 분명 아픈 데엔 스트레스도 한몫을 했겠구나 생각했다. 일단 졸업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선 학위가 필요했기에 마냥 유예생으로 남을 수 없어 한 선택이었다. 내 의지가 아닌 졸업, 기쁘지 않은 졸업, 떳떳하지 않은 졸업... 날씨도 엄청 더웠다. '오늘은 신나는 날이니까 많이 웃어야지' 생각했었다. 날씨가 덥든 말든, 내 기분이 더럽든 말든. 대학교를 졸업한다는 건 조금 다른 의미였다. 더 이상 학생 식분이 아니며, 소속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게 정말 무서웠다. 그 때의 불안 중 지금도 불안할만했겠다 싶은 게,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없으면 그게 과연 무슨 삶인가 생각하는 사람이다. 업은 곧 정체성이라는 가치관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백수가 되는구나 싶었다. 뉴스에서 백수란 단어가 나오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찔리듯 아팠다.

 

조금만 놀자, 생각했다.

 

3부에 계속.